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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매향리의 상처를 보듬다, 이기일 컬처디자이너

2018년 4월 9일 업데이트됨

특별한 소음 없는, 마음의 불안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저 평범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 제가 바라는 매향리의 평화에요.


반갑습니다. 본인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예술가 이기일입니다. 조각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사진, 영상, 그림 등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하게 활동해요. 개인전시와 기획전시, 레지던시 활동으로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중이고, 현재는 매향리 스튜디오의 총괄 운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작가님을 만나 뵙게 된 건 매향리 스튜디오때문인데요. 본격적으로 매향리 스튜디오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전에 작가님의 창작활동 대한 얘기를 먼저 들어볼까요?

작가니까 당연히 창작활동을 해요. 하지만, 작가 또한 자신이 선호하는 창작이 있잖아요. 저는 직접 창작보다 창작물을 수집하여 스토리텔링하는 것을 좋아해요. 혹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 소재를 모아내어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좋아하죠. 예를 들자면, 최근에 진행한 ‘한국의 비틀즈’라는 전시는 한국 내 비틀즈와 관련된 오브제를 최대한 수집하고, 다양한 현대예술가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비틀즈를 표현해낸 예술작품을 함께 전시했어요.

THE BEATLES: 한국의 비틀즈 마니아 전시(2012.07-10_롯데갤러리)


비틀즈가 활동했던 당시, 한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금지’가 있었던 시대잖아요. 그것이 비틀즈에 대한 ‘한국만의 물품’이 생성된 이유죠. 레코드사마다 금지곡을 뺀 음반도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졌고, 그 앨범들의 앨범커버도 각기 다르죠. 또 불법복제음반도 엄청났고, 비틀즈 가사를 표현한 가사집도 저마다 다르고요. 우리의 시대상이 만들어낸 그 당시 세계 최고 뮤지션에 대한 ‘한국만의 물품’을 수집하여 전시했는데 관람객 반응도 좋고 재밌었죠.





본격적으로 매향리 스튜디오에 대해 얘기해보죠. 우선, 매향리는 어떤 곳인가요? 
 


매향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부터 지난 2005년까지 주한 미 공군의 사격장과 폭격장으로 이용된 곳이에요. 매향리에 직접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고 서해의 바닷바람으로 안개 끼는 날이 적어요. 주한 미 공군사령부인 오산 공군기지와도 가깝고, 주변에 민가까지 있어 실제 전시상황을 고려해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연습 장소였겠죠. 누군가에겐 최적의 연습 장소가 매향리 주민들에겐 어땠을까요? 연중 250일 정도 사격과 폭격이 이어지고, 하늘을 나는 공군기에선 땅으로, 바다로 무차별하게 포탄이 쏟아지고. 오폭으로 주택이 파괴되고, 공군기 소음으로 난청을 겪고. 그냥 평범하게 사는 우리들은 상상 못 할 매일이 전쟁 같은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에요. 매향리는 단지 지역의 아픈 역사가 아닌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현대사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매향리 스튜디오는 어떻게 탄생 됐나요? 

매향교회 구 예배당


매향리 스튜디오는 지난 매향리의 아픔을 문화예술로 치유하고자 조성한 공간이에요. 경기창작센터의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의 일환으로 매향교회 구 예배당(1969년 건립)을 지난 2016년에 ‘매향리 스튜디오’란 문화공간으로 재생시켰어요. 


*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 생태·주거환경의 '에코(eco)'와 박물관의 '뮤지엄(museum)'의 합성어로써, 서해안 528km 경기만(안산, 화성, 시흥)의 낙후된 지역, 역사가 깃든 지역의 문화예술 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업


작가님과 매향리 스튜디오는 어떻게 인연이 닿은 건가요?

경기창작센터와는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인연이 닿았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예술가로서 스스로 창작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떠한 오브제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그것을 스토리로 만들어내는 제 2의 창작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또, 제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면 누구나 전시 장소에 와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공공재로서의 예술서비스를 함께 고민하게 됐죠. 이러한 저의 고민과 경험이 매향리 스튜디오와 함께하게 된 이유가 됐다 생각해요. 


매향리 스튜디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매향리 스튜디오 모습


제가 매향리 스튜디오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공간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지금 매향리 스튜디오는 옛 매향교회의 구 예배당이에요. 1984년에 매향교회 새 예배당이 세워진 이후엔 완전히 방치된 공간이었죠. 낡고 녹슨 외관인데 처음 보자마자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주변의 스산한 분위기를 흡수하여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뿜어내는 느낌이었어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아픈 역사 속 초라한 건물에서 예술가로서도 좋은 영감을 받았어요.


매향리 스튜디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반대보단 아예 관심이 없으셨어요. 차라리 반대하시면 설득을 해볼 텐데 애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셔서 혼자 속앓이 좀 했죠. 그러던 중, 건물 내부 전기 배선 공사 끝내고 테스트 겸 불을 켜놨는데 건물 앞에 계속 차들이 멈춰서더라고요.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가면 또 조금 지나 다른 차가 건물 앞에 멈춰 서있다 가고. 왜 그런지 여쭤봤더니 신기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차를 세우셨대요. 30년 동안 불이 켜진 적 없던 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니까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멈춰섰다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해요.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것을 해 보임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30년 만에 불이 켜진 매향리 스튜디오

    

매향리 스튜디오의 시작부터 이야기해볼게요. 매향교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세요?

매향리 스튜디오 공사 모습


최대한 본모습을 유지하려 했어요. 원래 교회의 모습을 변형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에 건물 천장의 낡은 목재를 교체하는 것 외에 크게 손댄 부분은 없어요. 건물 내부 페인트 작업이나 전기배선도 최대한 초창기 모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행했고요.

 

최대한 본모습을 유지한 이유가 있다면요?

지역의 낡은 공간을 재생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에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설령 그것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한 지역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재생’을 목표로 미화하거나 포장해선 안 되죠. 또 다른 이유는, 누구나 자신만의 매향리 스튜디오를 꾸밀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앞으로 이곳에선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이 진행될 텐데 매향리 스튜디오가 그들의 작품과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색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이라 생각했거든요. 





매향리 스튜디오 오픈 후 진행된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재건 후, 오픈전은 제가 진행했어요.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건물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좋은 창작 소재를 얻어 오픈전의 영광을 누렸죠. 건물 보수공사와 함께 주변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목 한 그루를 베었어요. 크고 썩은 나무 때문에 주변 풍경이 스산해지는 것 같아 베었는데, 쓰레기더미 속에서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죽은 나무의 시간이 왠지 매향리 과거의 단면인 것 같아 버리려했던 고목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매향리 스튜디오 이기일 오픈전 '1951-2005 겨울'


겨울이 끝나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다시 생명이 돋는 것처럼, 매향리의 길었던 겨울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목에 추위의 끝자락을 상징하는 고드름을 표현했어요. 물을 뿌리고 얼리고, 다시 물을 뿌리고 얼리는 과정만 수십 차례 반복했죠. 작업할 때, 마을 어르신들이 오셔서 얼려봤자 다시 녹는 고드름을 왜 얼리느냐 물으시면 ‘녹아야 하니까 얼린다’고 대답하며 진심을 담아 더디게 작업한 작품이에요.


개인 전시 외에, 대중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나요?

‘우리들의 농섬’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농섬은 매향리 스튜디오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무인도에요. 폭격 연습으로 원래 면적에서 3분의 1로 줄어든 작은 섬인데,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섬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죠.     

'우리들의 농섬' 프로젝트


‘우리들의 농섬’은 이 곳 농섬의 생태정화 활동 겸 예술체험 프로그램이에요. 참여자들은 농섬에서 마을해설사에게 매향리의 역사를 들어요. 갯벌길이 열리면 갯벌에 박힌 폭격의 흔적을 수거하며 정화활동을 하죠. 실제 갯벌에는 아직도 폭격의 흔적이 가득하거든요.
참여자들이 직접 수거한 포탄이나 미사일 외피들이 창작활동의 오브제가 돼요. 그렇게 매향리 스튜디오로 돌아와 각자의 농섬을 창작하고 작품설명회를 가져요. 신기한 것은 참여자 모두 작품에 진지함을 담는다는 것이에요. 말로만 듣던 폭격의 증거를 직접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평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씀하세요. 참여자들의 창작품이 갖는 의미가 커서 참여자들의 작품으로만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죠.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로젝트 초기에 매향리에 방문해 마을 주민들을 접했을 때에요. 매향리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세요.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헐값이 된 집과 논밭 탓에 그냥 살아내신 거죠. 보통 어르신을 대하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저도 나름 용기를 내어 어르신께 대화를 건넸는데 너무 큰소리로, 공격적으로 답변을 주시는 거예요. 너무 당황했죠. 외지사람에 대한 경계인가 싶어서 더 예를 갖추어 말을 건네도 또 소리 지르듯 답변을 해주시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마을 관계자께 여쭤봤더니 폭격 굉음 때문에 소리 지르며 말하는 것이 습관화된 거라고 알려주시더라고요. 폭격 훈련장이었을 때 매향리 마을의 일상적 소음이 비행기 소음의 몇 배래요. 그런 굉음 속에서 대화를 하다보니 목소리를 크게 낼 수밖에 없었던 거죠.


매향리 주민들과 소통하며 향후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나요?

주민들과의 소통은 프로젝트의 영감도 주지만, 프로젝트의 목표를 뚜렷하게 해줘요. 매향리 프로젝트는 매향리의 역사를 기반으로 지역의 발전과 문화를 창출하고자 해요. 이곳으로 들르게 하는 콘텐츠로서 매향리 스튜디오의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죠. 자연스레 외지사람들이 찾아오는 지역 만들기를 목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우리들의 농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차’하는 순간이 있었죠.  ‘우리들의 농섬’은 생태체험과 창작 활동이 연계된 프로젝트다보니 학교나 지자체 등 단체 참여율이 꽤 높았어요. 저 나름대로는 외지인에게 매향리의 역사를 알리고 지역을 활성화한 계기라 생각했죠.

농섬 전경


하지만, 프로젝트 끝나고 주민들과 대화해보니 정작 마을 어르신들은 농섬을 못 가보셨다는 거예요. 그 가까운 곳을 여태 왜 안 가보셨냐 여쭸더니 예전에는 폭격 때문에 못 갔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걸음이 불편해 못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죠.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지역 활성화란 목표에 정작 지역민을 담아내지 못함에 반성하며, 앞으론 마을 어르신과 더 잦은 소통을 다짐했죠. 곧 날이 따뜻해지면 마을 어르신들 모시고 농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바닷길이 열리면 함께 트랙터를 타고 갯벌로 들어가 어르신들의 지난날도 듣고, 함께 탄피 조각이나 포탄을 수거해 어르신들만의 작품도 만들어봐야죠. 





앞으로의 매향리, 또 매향리 스튜디오는 어떤 모습일까요?
 

올봄부터 본격적으로 매향리 평화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돼요. 미군에게 ‘쿠니 사격장’이라 불렸던 육상사격장은 평화공원으로 조성되기 위한 첫 삽을 뜨고, 공원 옆쪽으로 유소년야구장도 세워지죠. 마을 주변 시설물도 차차 생겨날 테고요. 진심으로, 앞으로 차차 변화할 매향리 지역이 주민들의 든든한 삶의 터전이 됐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 매향리 스튜디오는 지역민 스스로가 자기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연습 공간이 되어야죠. 현재는 경기창작센터의 행정과 예술가의 활동, 마을 주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는 매향리 스튜디오지만, 궁극적으로는 매향리 주민들이 자립하여 직접 이 공간을 운영하길 바래요. 그러기 위해선 매향리 스토디오를 위한 주민들의 역할이 있어야 하고 그 역할이 주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돼야하죠. 매향리 스튜디오는 그 목표를 위한 다양한 연습과 시도가 펼쳐지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직접 운영되는 매향리 스튜디오란 목표를 위해 어떤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현재 마을 주민들이 매향리 스튜디오를 소개하고, 진행 전시를 설명하는 도슨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매향리 스튜디오의 운영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스튜디오 내 작은 매실 전문카페를 열어 마을수익사업공간을 운영해보고자 논의 중이에요. 매향리는 미 공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되기 전 매화나무가 유명한 지역이었거든요. 매화향 가득하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몇 해 전부터 매화나무심기 운동을 진행 중인데, 이러한 마을재생 프로젝트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수익사업 모델을 고민 중이죠. 또, 현재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 물건, 사진 등을 수집하여 매향리 스튜디오를 매향리의 역사를 알리는 지역의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에요.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마을 주민이 직접 지역의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매향리 성장에 주축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질문의 범위가 확대되는 듯하지만,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감에 있어 예술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예술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술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Jeder Mensch ist Kuenstler)’란 말이 있어요. 행동하는 예술가로서 예술을 통해 시대와 소통했던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보이스(Joseph Beuys)의 명언이에요. ‘7000그루의 떡갈나무’란 그의 프로젝트는 예술가의 생각과 실천이 사람들의 사회적 소통, 참여, 창작행위를 유도해낸 대표적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써,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라는 그 자신의 말을 증명해낸 작품이라 생각해요. 


요셉보이스의 ‘7천 그루의 떡갈나무(7000 Oaks)’ (1980-1987)


「요셉보이스의 ‘7천 그루의 떡갈나무(7000 Oaks)’」 (1980-1987)

1982년 제7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로, 당시 녹색당 활동을 하던 요셉 보이스가 도시의 산업화, 지구의 사막화에 고민을 가지고 카셀 시내 곳곳에 7천 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을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카셀 시내 한 곳에 7천 개의 현무암 조각을 모아놓고, 한 그루의 나무가 심어지는 장소로 하나의 현무암 조각을 이동시켜 나무와 함께 심었다. 첫 번째 나무는 요셉보이스가 심고 나머지 6998그루는 나무를 분양받은 일반참여자들이 심었으며, 프로젝트 완성 전 숨을 거둔 요셉보이스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 박물관에 마지막 나무를 심으며 프로젝트는 완성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지역과 사회에 관심을 가진 예술가의 실천적 의지와 이를 함께한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건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라는 요셉 보이즈의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의 가치, 또 그러한 가치를 좋은 방향으로 실현하려는 예술가의 의지는 분명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활동이 있나요?


이용백 작가의 ‘한국적 모자이크’가 진행 중이에요. 이용백 작가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이기도 하고, 한국의 역사나 이데올로기를 모티브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여서 이번 매향리 스튜디오 전시도 의미가 크죠. 

매향리 스튜디오 이용백 작가 기획전 '한국적 모자이크'


특히, 매향리 스튜디오 건물 외벽에 모자이크 느낌을 반영시킨 설치작품은 폭격기 굉음에 가려지고 지워진 매향리의 아픈 시간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그 외 군사적 기밀이라는 이유로 지도에 가려진 DMZ 부분을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 등 매향리의 역사를 기반으로 ‘평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담긴 전시에요. 3월 초까지 계획된 전시였지만 연장이 확정됐으니 날이 따뜻해지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매향리 스튜디오의 목표가 과거를 치유하고 평화를 희망하다에요. 매향리의 어떤 평화를 기대하나요?

매향리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매향리의 평화에요. 매일같이 광음에 시달리고, 오폭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살아가며 내가 사는 마을 근처의 바다 한번 못 가보는 것이 보통의 삶은 아니잖아요. 사회가 점점 척박해간다지만 하루하루가 공포인 삶이 평범한 우리들에겐 당연한 것이 아닌데, 매향리 주민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온 시간이 벌써 반백 년이에요. 그저 특별한 소음 없는, 마음의 불안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곳. 매향리가 평범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 제가 바라는 매향리의 평화에요. 


    


인터뷰     윤혜성

사진        이기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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