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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예술로 전하는 아름다운 제주의 숨은 이야기, 제25회 4ㆍ3미술제 감독, 안혜경 컬처디자이너

2018년 4월 23일 업데이트됨

제주는 올해 '4ㆍ3' 70주년을 맞았다. ‘제주방문의 해’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제주, 그 이면의 슬픔을 문화예술로 풀어가는 4·3미술제는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다. 70년 전 제주의 4ㆍ3을 돌아보며 오늘 날의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 제 25회 4·3미술제의 안혜경 감독을 만나본다.


제주 4·3은 1945년 해방 직후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1954년 9월 21일) 해방 후 미 군정 시절, 당대의 제주는 혼잡했다. 일본군의 철수와 동시에 귀환 인구가 급증하여 많은 도민이 식량난과 전염 질병에 허덕였다. 더하여, 당시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에 속한 섬이었던 제주가 이남의 아홉 번째 도(道)로 분리, 승격되는 과정에서 군정의 일방적 군정관리 임용(친일 경력 경찰관을 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군정경찰로 채용)  및 부정행위(무분별한 쌀 공출)에 민심은 점점 흉흉해졌다. 제주 4·3은 그렇게 혼란스러운 당시의 제주에서 발생한다.  다음은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설명한 제주 4·3의 진상이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제 28주년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발포한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單選單政反對)를 기치로 내걸고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 4·3에 대한 정부의 공식 정의를 덧붙인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인해 제주 내 84곳의 마을이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았으며, 당시 제주도민의 10%인 3만여 명이 학살당했고,  그 중 90% 이상이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이었다.

간단한 소개로 시작해보자 반갑습니다. 저는 문화예술로 사회와 소통하는 안혜경입니다. 미술 전시 및 영화 관련 행사를 주로 기획하고요. 오늘은 25주년 43미술제 감독으로 인사드리게 됐네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제주에서 아트스페이스씨라는 갤러리를 운영해요. 미술작품만 전시하는 공간이라기보단 용도에 따라 다채롭게 변신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도 내외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활동을 제주도민들과 나누는 것이 목표죠. 갤러리 내에서는 지역민과 지역예술인이 다양한 매체의 예술을 통해 사회의 이슈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기획전시, 예술 강연, 다큐멘터리 상영, 문화토론 등 소소하고 잔잔한 프로그램들도 기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어요. 여성 및 사회의 소수자를 담아낸 영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것과 함께, 제주가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하나의 기반을 더하고자 노력했죠.  제주4·3과 관련한 활동은 일상처럼 지속해왔어요. 대표적으로, 2008년 43평화공원 개관 시 ‘동백꽃 지다’라는 개관 특별전 및 미국에 4·3사건을 알리는 전시(Camellia Has Fallen: Contemporary Korean Artist Reflect on the Jeju 4·3 Uprising)를 진행했습니다. 

(좌) 동백꽃 지다 개관 특별전 (우) 미국 4ㆍ3전시

여성, 4·3 등 보는 이에 따라선 활동의 소재가 다소 민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렇죠. 개인적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아티스트는 창작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여 대중과 공유할 수 있잖아요. 때문에 예술가의 창작에는 대중과 사회를 향한 ‘메시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불편한 진실은 존재하였고 음악,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매체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작에 이를 녹여내며 예술은 늘 대중과의 소통매체로 기능하였죠.

제주 4·3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들

제주 4·3도 마찬가지예요. 제주4·3을 인급조차 해선 안 되던 시절,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삼촌'(1978년)이 발표되며 많은 변화가 생겼죠. 당시에는 제주 내에서 4·3을 겪은 이들조차 그 이야기는 입에 올려선 안 되는 금기와도 같았는데 '순이삼촌'이란 문학을 통해 4·3사건은 세상에 나왔고 4·3연구소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이후 강요배 작가의 '동백꽃 지다'(위 화집), 오멸 감독의 '지슬'(영화) 등 제주 태생의 예술인들이 4·3을 소재로 한 창작을 통해 대중과 4·3에 대해 소통했죠. 이렇게 예술은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큰 폭발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대중적으로 민감하거나 낯선 소재일수록, 메시지가 담긴 아티스트의 창작과 대중의 소통을 엮어내는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여성, 제주 4·3 등 민감하다 느껴지는 활동일수록, 이러한 소재의 예술과 대중의 사회적 소통을 돕는 매개자로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 생각해요.

4·3미술제의 감독 역시 예술 매개자로서의 활동인가 그렇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저 스스로 제주4·3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요. 안온하고 휴식의 공간인 관광지로서의 제주라는 이미지를 넘어 그 아름다운 풍광, 그 절경지 이면에 담긴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다시는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어요. 특히, 올해는 4·3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으로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제노사이드의 4·3의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책임감이 있죠.  *제노사이드: 인종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나타내는 'cide'를 합친 것으로 '집단학살'을 뜻함. 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 (네이버 지식백과) 4·3미술제는 올해 25회를 맞았다. 70년 제주4·3의 1/3을 함께한 셈이다. 감독이 생각하는 43미술제의 정의는 무엇인가 저는 4·3미술제를 ‘43미술운동’이라고 생각해요. 4·3미술제는 1994년 ‘닫힌 가슴을 열며’로 시작한 이래, 지난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어 온 4·3의 대표 문화예술행사에요. 25년이란 역사에 의의를 두는 이유는 실재(實在)의 역사로서 4·3을 사회에 알리기 위한 지역기반 예술공동체의 순수한 열정과 실천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에요. 개인적 행위가 아닌, 공통목표를 가진 예술공동체의 지속된 움직임이란 것이 ‘43미술운동’이라 생각하는 이유죠. 예술을 매개로 제주 4·3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 진상을 규명해온 4·3미술제의 지난시간이 곧 4·3사건의 고단한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생각해요. 

왼쪽부터 6회 도록표지 스캔본, 7회 포스터 촬영본, 6회 도록표지 스캔본, 9회 도록표지 스캔본

4·3미술제에는 ‘지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이란 평가가 따른다. 지역미술은 무엇이며, 감독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쉽게 말해 한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미술이에요. ‘지역의 정체성’이란 그 지역만의 문화와 역사, 장소성, 사람 등 로컬리티(locality)를 담고 있는 무언가를 대변하죠. 4·3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이지만, ‘제주’와 ‘제주민’이라는 특정 공간과 사람을 대상으로 일어난 사건이기에 제주의 역사이기도 하죠. 4·3미술제는 ‘미술’이라는 수단으로 제주의 역사를 풀어가기에 대표적인 지역미술의 일례이죠. 하지만, 지역미술이라는 것이 ‘지역민만의, 혹은 오직 지역민에 의한 미술’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체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이유로 4·3미술제도 21회부터 예술 감독제로 폭넓게 국내외 외부작가의 참여를 도모하고 있어요.  제주에 뿌리를 가진 작가는 지역사(史)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높다는 장점이 있고, 외부 작가들은 그들만의 순수한 시선으로 4·3을 바라보고 참신한 창작을 끌어낼 수 있기에 함께 소통하는 과정에서 좋은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해요.  앞서 감독이 말했듯 4ㆍ3미술제는 '4·3'이란 지역의 역사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외부작가 유입의 부정적인 영향은 없나 4·3미술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작가가 4·3을 기억하는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이에요. 매번 미술제에 앞서 참여 작가들이 함께 미술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4·3유적지 탐방, 희생자 및 유족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하죠. 이러한 워크숍을 통해 4·3미술제에 대한 공동의 이해도와 목표의식을 갖게 되고 소통의 과정에서 참여작가 간 창작의 영감도 주고받아요. 설령, 상대적으로 4·3에 대한 외부작가들의 이해도나 시선의 깊이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시선, 또 그들이 이해한 4·3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예술에서 중요한 다름, 서로 다른 시선의 교류는 제주 예술인에게도 필요한 경험이고, 또 외부작가의 작품이 어떠한 관객에게는 가장 큰 메시지와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 25회 4·3미술제 참여작가 워크숍

4·3을 문화예술로 풀어가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 시대의 사건을 예술로 담아내는 것은 일종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사람은 죽지만 예술은 세대가 이어지는 한 영원하잖아요. 작품으로 남겨진 예술은, 예술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 한 지역의 또 시대의 역사를 담아내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가치가 있죠. 또, 때로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그 어떤 말보다 단단할 수 있어요. 4·3을 언어로 설명하기보다 그 당시의 흑백사진 한 장이, 유족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 한 점이 더 가슴을 울릴 수 있거든요. 4·3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만큼 그 역사가 가진 아픔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예술가와 관객이 작품을 통해 묵언의 소통을 하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활동에 대중들은 반응하는가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주도가 관광지로서 크게 변화하며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예나 지금이나 관광 차 제주도를 방문하셨던 분들이 우연히 4·3미술제를 접하고 4·3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4·3이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인지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잡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단계로 나아 가기 위한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죠. 개인적으론 이번 4·3미술제 준비 과정에서 또 다른 변화를 느꼈어요. 이번 25주년 4·3미술제는 다양한 협업이 이뤄졌어요. 팀을 이룬 공동작품을 창작하기도 하고, 기획·홍보 등 운영과정에서도 관련 단체들과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했죠. 특히,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그래픽 디자인팀 ‘일상의 실천’이 도록 이하 다양한 시각매체물을 제작지원해준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생각해요. 기획운영 과정에서 지역을 넘은 아티스티팀과 협업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민주적 시민역량이 크게 키워진 요즘에 4·3에 대한 관심과 시선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죠. 그리고 그것이 4·3미술제의 확산성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4·3의 70주년이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4·3이 발생한지 70주년이지만, 실제 4·3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표명된 건 20년이 채 안돼요.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대한 절차가 진행됐어요. 이후, 정부 공식 사과(2003)가 있었고, 4·3평화재단 출범(2008), 국가추념일 지정(2014)순이에요. 올 해 4·3 70주년을 맞아 제주도에서 4월 3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된 상황이에요. 오늘날까지 제주도 내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있었지만, 정부의 공식적 입장으로 정리되는 상황은 위와 같죠.  감독만의 답이 궁금하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4·3을 알아야하는 것일까 실재(實在)한 사건으로 우리의 역사니까요. 가장 본질적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현대사를 어떤 이는 알고, 어떤 이는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닐까요? 4·3은 해방 이후 한반도 내 정치 이데올로기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져요. 오랜 시간 가려지고 왜곡된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역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민감하단 이유로, 혹은 비극적이란 이유로 삭제될 수 없는 실재의 기록이죠.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같이 인지’하는 것이에요. 그 시기 그 땅에서 벌어졌던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4·3을 역사로서 우리 모두 알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도 그저 간단한 이유에요. 몸이든 마음이든 그 아픔을 함께 나눌 때 고통이 줄어들잖아요. '공감'의 힘이죠. 아직도 4·3의 기억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한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있어요. 말도 못 한 채 견뎌낸 아픔의 시간에 트라우마는 더 커졌죠. 그들에겐 4·3에 대한 우리의 동일한 인지만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위로가 될 수 있어요. 누군가의 아픔에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그 아픔에 귀 기울이며 공감한다는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하므로 많은 분이 4·3의 역사와 슬픔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개막한 미술제에 대해 얘기해보자. 25회 4ㆍ3미술제의 타이틀과 의의는 무엇인가 

제25회 4ㆍ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전시 제목은 ‘기억을 벼리다’로,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모하메드의 ‘재갈’이라는 시에서 이번 주제의 영감을 얻었어요. ‘벼리다’는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고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든다는 뜻인데요. 정신을 가다듬고 긴장하여 제주 4.3에 대한 의미를 이번 전시에 담아보겠다는 참여작가들의 의지와 70년 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피어오른 4·3의 횃불이 다시 불붙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이번 미술제의 가장 큰 의의는 '4·3의 현대적 해석’이에요. 4·3 당시 무력진압과 학살로 무고한 제주도민은 가족을 잃고, 혹은 온 가족과 마을이 몰살당하기도 했죠. 4.3을 피해 일본 오사카로 목숨을 걸고 밀항해 피신한 난민도 5000명에서 1만명이나 되었다고 해요. 당시 국제난민이었던 것이죠. 우리에겐 70년 전의 기억이 시리아엔 현재 진행형이에요. 7년째 계속되는 내전으로 무고한 시민이 죽고, 살아남은 국민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국제 난민이 됐죠. 이렇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폭력과 희생의 세상이 있어요. 70년 전 제주가 고립된 섬으로서 외로이 겪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오늘날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 그로 인한 이슈를 함께 나누자는 것이 이번 25회 4·3미술제의 주요 의미입니다.  ‘4·3의 현대적 해석’이 미술제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 전시 작품과 프로그램 곳곳에 반영되어 있어요. 김옥선 작가의 ‘난민 사진 시리즈’, 임흥순 감독의 재일제주인 영상 등 전시 작품을 통해서 오늘날의  4·3을 엿볼 수 있으며, 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는 제주 4·3과 연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유명 예술가들의 실천적 삶과 예술에 대한 영화들도 상영해요. 시리아 내전, 난민과 재일제주인 등 강연과 좌담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어요. 지난 24회 43미술제는 제주 원도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물리적 확장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오는 25회 미술제는 ‘오늘날의 4·3’을 비추기 위해 전시 작품 및 구성 프로그램의 다양화 등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4·3미술제 종료 후 향후 목표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삶의 목표가 있어요. 내가 발을 딛고 사는 곳, 그 곳을 중심으로 주변과의 관계망 속에서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를 깊이 있게 잘 들여다보는 인생을 사는 것이에요. 이러한 제 인생의 목표를 이뤄가는 여정으로 제주 4·3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문화예술을 매개로 제주4·3을 포함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대중과 잇는 다양한 활동을 실천해야죠. 특히, 이번 4·3미술제를 기반 삼아 제주4·3의 역사적 아픔이 재현되는 오늘 날의 이슈를 들여다보는 일이 앞으로도 쭉 제 삶의 큰 관심 영역으로 자리 잡으리라 생각해요. 여성, 난민, 이주, 노동 등 자의에 상관없이 희생당한 소수를 어우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를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지속해나가며 제 삶의 목표를 가치 있게 실현해나가고 싶네요. 마지막 질문이다. 1947년 이후 70년이다. 앞으로 70년 후, 제주4ㆍ3은 감독의 바람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 기억하는 역사가 될 수 있을까 갈 길은 멀지만,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와 보상, 왜곡된 4·3의 바른 규정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길 바라죠. 무엇보다 긍정적인 이유는 4·3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변화에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4ㆍ3사건을 거론할 땐 이념적 잣대로 판단되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잖아요. 오히려 개인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4·3에 대해 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많아요. 4·3알리기 캠페인 ‘4월엔 동백꽃을 달아주세요’도 진행되고 있고, 4·3 관련한 대중예술 콘텐츠도 점점 나오고 있죠.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껴요. 훗날 언젠가는 모든 국민이 제주의 4월을 이념적인 색깔을 덧입히지 않고 통일을 염원하고 탄압에 저항한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같이 기억하는 역사가 되어있으리라 믿어요.

[제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일시: 2018.04.03.(화) - 29(화)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이아 갤러리, 아트스페이스씨, 영화문화예술센터(제주 원도심)

인터뷰  윤혜성 사 진 안혜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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