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분단, 가난과 고통, 편견을 이기는 음악의 힘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 있습니다. 2005년 설립되어 꾸준한 음악교육활동과 공연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추구하는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이 그곳입니다. 오늘은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에서 하모니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를 위한 음악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민정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먼저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과 ‘하모니네이션’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부탁드려요.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은 음악NGO단체, 그러니까 음악을 통해 봉사하는 단체입니다. 하모니네이션은 재단의 두 가지 주요한 축인 교육사업과 공연예술사업 중 음악교육을 맡고 있는 곳인데요. 하모니가 ‘조화로운’ 그런 의미잖아요. 하모니네이션은 조화로운 삶, 함께 조화로운 세상을 위한 예술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모니네이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이 이루어지나요?
문화소외문제를 해소하고 클래식의 저변확대를 위한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요. 바이올린, 플룻, 첼로 세 악기를 중심으로 그룹 레슨을 하는데, 행정자치부,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국 15개 협력 센터 등을 통해 학생들이 모이죠. 소외 지역의 학생들도 있고 탈북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각 센터에서는 평소에 그룹 앙상블 교육(하모니네이션 오케스트라)이 이루어지고, 일년에 한 번은 모두 모여서 클래식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요.
이 교육 프로그램의 1차적인 대상과 목적은 음악 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전공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듯 하기는 어려워요. 부족해도 즐겁게 참여하고 배울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하고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학생들도 자신이 조금씩이라도 발전해야 더 재미있게 배우기 때문에 목표는 필요해요.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식 공연장에서 정식 공연 무대에 서는 ‘목표’를 설정하는 거죠.
하모니네이션 오케스트라는 아이들의 기량과 수준별로 크게 ‘새싹’, ‘나무’, ‘정원’으로 구분이 되는데 새싹 오케스트라 친구들은 정원 오케스트라 선배들이 멋있게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음에는 저 무대에 서야지’라는 목표를 가지고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되더라고요.
재미있는 것은, 공연 때문에 모일 때 학생들이 서로 어디서 왔는지 전혀 모르게 해요. 오직 음악으로 모이는 거죠. 저희가 대기실에는 부모님도 못 들어오게 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아이들이 뭔가를 배운다면 부모님들이 바라는 것들이 생기게 되잖아요. (웃음) 어른들의 편견이나 가치관으로 인해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온전히 아이들끼리만 같이 있도록 했어요. 어른 없이 아이들만 두어도 괜찮을까, 한편으로 저희도 걱정을 했지만 실제 놀라운 일이 생기는 거에요. 아이들끼리는 금방 친해지고 어울려 놀면서 협업이 너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거죠. 어른들이 역으로 많이 배우는 지점이 있어요.
하모니네이션에서의 음악교육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가장 큰 특징은 ‘그룹 교육’이라는 거예요.
전통적으로 클래식 음악교육은 1:1교육이었어요. 보통 개인교습을 하잖아요? 반면에 저희는 그룹으로 교육을 합니다. 여러 명이 함께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는 거예요. 사실 가르쳐야 하는 학생 수가 많다 보니 현실적인 이유로 그렇게 시작이 되었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면, 이전에 방과후 학교에 음악교육 과정이 있었어요.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는데, 이유는 바이올린이 기초용 악기인 점도 있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보급이 쉽다는 ‘행정운영적’ 측면도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이올린이 악기 보급 면에서는 용이할 수 있지만 처음 음악을 접하기 위한 악기로는 어려운 악기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피아노는 건반에서 일정한 음이 나오잖아요. 바이올린은 처음에 음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기 전까지 처음 한동안은 소음 같은 소리가 나고, 부모님이나 주변에서는 소리가 이상하다거나 잘 못한다는 반응을 하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재능이 없거나 음악이 재미 없다고 느끼게 되고, 처음부터 음악에 대한 안 좋은 기억부터 생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더욱 어떻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야 할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음악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을 많이 합니다.
다시 그룹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국에서는 이런 그룹 교육 방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처음 이런 방식으로 교육을 하는 것에 어려운 점이 많기도 했지만, 십여 년 가까이 교육을 진행해 오면서 여러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음악을 배울 때에만 가능한 유익한 장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어요.
한 예로, 선생님이 들려주고 제시하는 소리는 아직 어린 학생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다가오는데 그게 굉장히 높은 벽이라 좌절감을 먼저 느끼기 쉬워요. 음악이 힘들고 어려운 대상이 되는 거죠. 그런데 비슷한 또래와 수준의 친구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며 배우면 어떤 게 더 좋은 소리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서로 그만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서 그만큼 좋아지고, 그 다음에 또 조금 더 발전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물론 소리라는 것이 섬세하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룹 교육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음악성을 전문적으로 잘 키워주고 지도할 수 있는 교수법은 필요하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하셨고 현재는 음악교육가로서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활동을 이끌고 계신 어윤일 박사님께서 그룹 교육에 맞는 새로운 교수법과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디자인하고 계세요. 클래식 곡뿐 아닌 대중적인 노래나 동요들도 아이들이 쉽게 익히고 연주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직접 편곡하시기도 하고요.
그동안 보다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왔기 때문에 하나로 정리된 교재를 만든다든지 악보나 교수법에 대한 저작권 등에 대한 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활동해왔는데, 그런 순수성을 보고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계속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음악 전문 출판사에서는 교재 출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셔서 내년에는 교재도 출판이 되고 많은 학교들에 정식으로 도입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모니네이션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함께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재를 통해 앙상블 교육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전문 강사도 양성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음악의 그룹교육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폄하하는 시각도 강했었는데, 이제는 시대의 필요나 흐름이 바뀌어서 그런지 그룹 앙상블 교육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음악인들이나 대학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어요.
어떻게 하모니네이션에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공부를 했어요. (조민정 디렉터는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국립음악 디플롬과 레오폴트모차르트 첸트룸대학 최고연주자 과정 등 10년 가까이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를 했고, 현재는 부다페스트 국제 뮤직 페스티벌의 디렉터도 겸하는 등 국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같이 수업을 듣던 독일인 시각장애인 지휘전공 친구가 있었어요.
독일은 클래식 음악의 역사가 굉장히 길고 그만큼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모든 클래식 곡과 작품에는 시각장애인 전용 악보들이 다 마련되어 있어요. 시각장애라는 신체의 핸디캡은 있을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음악을 배우는 데 있어 제도나 제반적인 측면에서 소외되는 건 아닌 거예요. 굉장한 거죠.
한 번은 공연을 앞두고 전체 오케스트라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연주를 하던 중에 그 친구가 지휘를 하다가 제가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는 거예요. 백 몇 십 번째 마디 어디가 소리가 틀렸다 하고요.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나보다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 거잖아요. 그리고 동시에 그런 경험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그때 그 친구한테 이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꼭 너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대단한 좋은 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한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해주는 일이라도 꼭 하겠다, 얘기를 하고 스스로 다짐을 했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강원대학교로 출강을 하게 되었는데, 강원대 바로 가까이에 강원명진학교라고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어요. 독일 친구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명진학교에 가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죠. 장애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없다 보니 그에 맞는 교재가 필요하거나 교수법에 대해서 잘 모르겠을 땐 계속 주변에 물어보고 찾아보고 했어요. 그러다가 그런 분야에서 이미 오랫동안 연구와 활동을 해오셨던 어윤일 교수님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을 만나게 되었어요.
음악은 공기의 진동을 통해 전달되는 일종의 언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음악은 더 각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 음악인으로서 음악교육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저도 악기를 전공했고 가르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이가 처음 음악을 배울 때 부모가 아이에게 악기를 정해주잖아요? 아이의 관심이나 개성은 상관 없이 부모 눈에 좋아 보이는 악기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무조건 바이올린 레슨을 시킨다든지, 피아노를 가르친다든지 하죠.
사람마다 각자 편안하게 느끼는 음역대, 좋아하는 소리의 질감이 다 다르거든요. 날카롭고 예민한 소리를 싫어하는 아이한테 바이올린을 억지로 시키면 아이가 어떻게 느끼겠어요. 음악이 싫고 괴롭겠죠.
아까 독일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악기를 배우거나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해요. 근데 절대 부모가 먼저 악기를 제시하지 않아요. 그냥 아이를 악기점에 데리고 가죠. 아이가 트럼펫도 불어보고 첼로도 만져보고 드럼도 쳐보고 하면서 자기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악기를 선택하도록 해요.
강요로 배우는 교육으로는 음악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기 힘들어요.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대학에 출강하며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클래식 레슨도 하고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 레슨도 하고,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그룹 교습도 하면서 본의 아니게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하모니네이션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음악을 통한 행복의 나눔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모니 교수법이, 여러 명이 함께 음악을 배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어온 대학에서도 점점 관심을 가지고 도입을 시도해보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점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여겨져요.
활동을 하며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탈북센터에서 만난 학생들. 의외로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경제적인 지원이 아닌 관심이었어요.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 눈 한번 마주쳐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지원센터 같은 곳은 겨울에 난방이 잘 안 되어서 추운 곳이 많아요. 한 번은 수업이 있는 겨울 날이었는데, 바이올린이 몸에 닿을 때 너무 차서 저도 모르게 제가 ‘앗 차가워’라고 했었나봐요. 다음 번에 수업에 갔더니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꼭 품고 있는 거예요. 악기를 따뜻하게 해놓으려고요. 그런 기억, 경험들이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생각하시는 비전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전문 연주자로서, 교육자로서, NGO활동가로서 세 가지 일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어요. 그 밸런스를 통해서 여러 분야에서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하모니네이션에서 배운 학생들이 해외 페스티벌에도 나가고, 반대로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서로 자기가 나눌 수 있는 부분들을 나누며 함께 행복한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하모니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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