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입구역. 한양대로 이어지는 통로에 어른 키 두 배 높이 설치물이 서 있다. 한양대를 오가는 학생·교직원이 이따금 이 앞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설치물에 내장된 단말기에 교통카드가 닿으면 500원이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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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은 한양대에서 약 2700㎞ 떨어진 필리핀 나가 시(市)의 한 식당 임대료 쓰인다. 아테네오대학 나가캠퍼스 교내 식당 안 '카이나 1호점'이다. 오는 6월 13일 이 대학 개강에 맞춰 문을 연다. 카이나(Kaina)는 '필리핀 여성의 자활을 돕는 한식 프렌차이즈'를 표방한 소셜 벤처다. 회사명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함께 식사하자'는 의미다. 소셜 벤처는 환경·빈곤·불평등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벤처기업이다. 창립자는 한양대 한승훈(25·파이낸스경영학과 12학번), 성지훈(25·영어영문학과 12학번), 이재서(25·정책학과 13학번)씨, 파이낸스경영학과 15학번 최정석(23), 그리고 아테네오대학 나가캠퍼스 경영학과 학생 네리 로즈 자모라(22·여).
이들 다섯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연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청년들이 국제적 연대 속에 소셜 벤처를 만드는 것을 독려하는 행사(Social Venture Youth Exchange, SVYE)다. 한양대에서만 약 30명이 참석했다. 학생들의 눈에 비친 필리핀 취약계층의 삶은 고단했다. 카이나 1호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마오그마 빌리지'는 싱글맘들을 위해 조성된 집단 거주지다. 8년 전 이 일대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주거권을 뺏긴 여성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함께 마련했다. 10~60대 싱글맘과 자녀 등 180여 명이 산다. 싱글맘 중 상당수는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채 임신했다. 일자리 없는 여성이 많다. 하루 최저 임금(8시간 기준)은 한국 돈으로 5000~6000원인데 이를 제대로 다 받는 여성은 드물다.
카이나는 이들을 돕기 위해 3단계 계획을 만들었다. 4주간 한국 음식 교육→고용 및 일자리 제공→1년 뒤 프랜차이징 통한 자립이다. 카이나는 지난 1월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주력 메뉴는 김밥과 제육볶음, 강된장 비빔밥으로 정했다. 이들의 사업계획을 심사한 한양대는 산학협력 사업 예산에서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테네오대학은 교내 식당의 한 공간(23㎡)을 빌려주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임대료는 월 12만원. 카이나 1호점은 마오그마 빌리지 여성 2명을 고용한다. 이들이 한국 요리를 만들어 아테네오대 학생과 교직원에게 판매한다. 카이는 2년 이내에 나가 시에서 5호점까지 내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카이나 분점에서 1년간 일한 여성들에게 분점 운영권을 줄 예정이다.
"소셜 벤처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이재서), "여성들이 겪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한승훈), "사회적 가치를 비지니스로 실현하겠다"(성지훈), "취약계층 여성이 당당히 활동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끔 돕고 싶다"(최정석),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 확산될 수 있다"(네리)는 게 이들의 확신이자 소망이다. 한양대생들은 다음달 초순 출국을 위해 이번 학기를 휴학했다. 내년 초까지 현지에 머물며 1호점을 성공시킬 계획이다. 17일 지하철역에서 시작된 디지털 모금엔 25일 현재 210여 명이 참여해 첫 달 치 임대료가 마련됐다. 임대료 모금이 이뤄진 설치물 역시 한양대 학생 한 명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경제금융학부 4학년 최규선씨가 지난해 경영학부 신현상 교수의 '사회적 기업가 정신' 수업에서 낸 아이디어다. 여기에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술경영학과 김지은 교수, 일반대학원 아트테크놀로지학과 황석주 교수가 기술을 지원하고, 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소셜 벤처를 위한 아이디어는 '스테이션208''이라는 소셜벤처로도 이어졌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jo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한양대생들, 필리핀 싱글맘들 위해 '한식 프렌차이즈'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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