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사람, 혹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비영리단체 ‘풀울림’ 공동대표 조미수입니다. 풀울림은 국경을 넘어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시민들의 모임이에요. ‘풀울림’이란 단체명도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모여 아름다운 숲을 만들고, 더불어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는 희망을 담아 지었어요. 평화는 국적과 언어 관계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편견 없는 교류와 소통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구시민이 함께 만드는 뮤지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구시민이 함께 만드는 뮤지컬’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4개월 동안 함께 만들어 가는 뮤지컬이고, 제목은 ‘어 커먼비트(A Common Beat)’에요. 원래 업위드피플(Up with People)이라는 미국의 국제시민교육단체에서 ‘다양성과 진정한 평화’를 테마로 제작한 시민 뮤지컬이에요.
한일공동 뮤지컬 '어 커먼비트' 공연모습
내용은 간단해요.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고 고립돼 살아가던 가상의 4개 대륙 사람들이 경계를 허물고 편견과 오해를 극복해 하나가 되는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이 작품을 커먼비트라는 일본 NPO(비영리기구) 단체가 번안하여 무대화했어요. (물론 파트너쉽을 가지고요) 해마다 뮤지컬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일본 시민 100명을 모아 제작하죠. 풀울림은 커먼비트의 제안으로 2015년에 ‘한일공동뮤지컬’이란 테마로 함께하게 됐죠.
제안을 받아들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일공동 뮤지컬 '어 커먼비트' 프로젝트 초기 멤버
커먼비트 이사이자 '어 커먼비트' 총연출가인 한주선씨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어요. 둘 다 재일조선인 출신으로 친분이 두텁거든요. 어느 날 한주선씨께 연락이 왔는데 일본에서 '어 커먼비트'를 본 한국 유학생이 ‘이 뮤지컬을 한국에서도 꼭 했으면 좋겠다’란 이야기를 했대요. 그래서 주선씨가 당시 한국 유학 중이던 제게 연락을 한 거죠. 한일 양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어 커먼비트' 만들어보자고요.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기도 하고, 한일관계를 민간인들의 즐거운 교류 속에서 풀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동참했죠. 주선씨와 저 그리고 평화교육, 문화교류, 국제시민활동 활동가 몇몇이 힘을 합쳐 본격적으로 한일공동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뮤지컬에 참여할 한일 참가자를 모으는 것 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일본에선 '어 커먼비트' 뮤지컬이 진행된 지 10년이 넘었고, 이미 공신력이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한국과 일본이 함께 만드는 공연에 관심을 가졌어요. 반대로, 한국에서 뮤지컬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어 커먼비트'는 시민배우가 참가비도 내요. 연습실 대관료, 합동공연을 위해 한일 양국을 오가는 교통비 등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있으니까요. 2015년만 해도 풀울림이 정식단체가 아니다 보니(2016년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 평화, 한일 분쟁극복 이런 걸 얘기하며 회비까지 언급하니 종교단체인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고백하자면, 첫 공연엔 제 지인이 참 많이 동원됐어요(웃음). 다행히 1회가 좋은 샘플이 되어서 현재는 국제교류나 무대경험을 원하는 다양한 분들이 모여요. 10대 청소년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회사원, 예술가, 주부, 은퇴부부 등 연령과 직업 모두 다양해요. 일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고요.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모인 후에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공연까지 총 4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요. 오디션을 통해 역할을 정하고, 나라별로 한 달에 최소 두 번 만나 정기연습을 해요. 총연출가인 한주선씨 주도 아래 노래, 연기, 춤을 트레이닝 받기도 하고, 참가자 간의 피드백이나 아이디어를 나누며 작품을 만들어가죠. 한일합동 연습은 한 달에 한 번, 총 4번 진행돼요.
뮤지컬 '어 커먼비트' 한일 합동 오리엔테이션 및 오디션
양국 시민배우가 함께 연습할 기회가 적어 아쉽기도 하지만 나름의 매력도 있어요. 하나의 장면 속 등장인물들이 따로 떨어져 연습하다 함께 호흡을 맞추니 완전체가 되는 순간의 에너지가 엄청나요. 물론 실수도 엄청나죠.(웃음) 비록 한 달에 한 번 호흡을 맞추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서로 즐거운 에너지를 얻죠.
연습부터 공연까지. 유독 즐거웠던, 혹은 감동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음... 사실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다 에피소드에요. 마치 하나의 스토리 같거든요. ‘어 커먼비트’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맞춰가는 과정이 돌이켜보면 늘 즐거움이에요. ‘어 커먼비트’를 3년째 진행하며 느끼는 것은 오해와 편견은 서로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에요.
한일 시민배우 합동연습
실제로 일단 다른 두 존재가 만나면 자연스레 그걸 풀어나가는 나름의 방법이 생겨요. 언어적 차이는 바디랭귀지로 풀고, 생각의 차이는 서로의 목소리를 내어 조율해서 풀고, 문화적 차이는 서로의 문화를 일단 경험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풀죠. 4개월간의 과정은 ‘어 커먼비트’를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제한된 울타리 없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죠.
한일 시민배우 합동연습
울림이 있었던 에피소드로는 한국의 한 청년이 전한 소감이 떠오르네요. 춤과 노래를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레 친해져요. 하지만, 그분은 끝까지 말씀도 잘 안 하고 어울리는 것도 멀리하셨죠. 그래서 그분이 마무리 인사를 하며 ‘함께해서 정말 좋았습니다. 즐거웠어요.’라고 말씀하실 때 놀랐어요. 자신은 늘 혼자 작업하는 게 익숙한 예술가여서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몰라 마음을 못 열었는데, 그런 자신이 공동체에 함께할 수 있도록 조용히 배려해주는 타인에 무언의 감동을 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럴 때 묘한 감정을 느껴요. 보통사람으로 보이는 개인이 갖고 사는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되거든요.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국가 간이든, 우리 사회 내부에서든, 더 좁게는 개인이 속한 작은 공동체 어디서든 필요한 일이고,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프로젝트명을 ‘한일시민’, 혹은 ‘한일양국’이 함께 만드는 뮤지컬이 아니라, ‘지구시민’이 함께 만드는 뮤지컬이라고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저만의 다양한 정의를 내리는데, 그중 하나가 ‘평화는 국가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적을 칭하는 순간 가름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어 커먼비트’의 한일 합동 연습의 경우에도 한국인, 일본인 따로 모이라고 하게 되면 묘한 이분화가 생성돼요. 물론,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뮤지컬이지만 ‘한-일’이란 단어를 뛰어넘어 보다 공동체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국적과 상관없이 지구촌 사람을 모두 칭할 수 있는 단어인 ‘지구시민’을 쓰게 됐어요.
좀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우선은 제 개인적 배경인데요. 저는 재일조선인 3세에요.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재일조선인은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요. 저는 한국 국적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니 일본어를 원어로 쓰고 일본 문화에 익혀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국적이 일본이 아니니까 외국인 취급을 받죠.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살다보니 재일조선인에 대한 편견, 또 한국어를 유창하게 못한다는 이유로 일본인 취급을 받아요. 그래서 전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 너무 어려웠어요. ‘난 어디에 소속되어있나?’ 제 스스로 파고들게 됐죠. 그 고민의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한국인’, ‘일본인’이라는 표현은 국적과 민족, 언어, 출생지, 문화, 풍습 등 ‘조건’이 존재하고, 그 조건이 부족한 사람을 배제하는 매우 협소한 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렇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평화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요? 여행을 좋아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른 나라를 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늘 열망이 있었어요. ‘여행’이란 단어가 제겐 너무나 근사한 이상이었죠. 나의 이 이상을 어떻게 내 개인적 고민과 잘 엮어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일본의 피스보트(Peace Boat)란 NGO에서 일하며 민간외교나 문화교류 활동을 본격화했죠.
피스보트(Peace Boat)에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피스보트' 활동 당시 조미수 컬처디자이너
피스보트(Peace Boat)의 슬로건은 평화를 실어 나르는 배에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약 100일 동안 20개가 넘는 국가를 함께 여행해요. 배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승선자들에게 반전, 평화, 인권, 환경, 반핵, 분쟁 해소를 주제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배에 탄 사람들이 국적을 떠나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는 워크숍도 많아요. 또, 여행지에 대한 역사교육도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고요. 다양한나라에서 모인 평범한 시민들이 ‘배’라는 한 공간에서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제 업무였죠.
한국에서의 풀울림 활동, 일본에서의 피스보트 활동 모두 ‘민간교류’가 키워드란 생각이 들어요.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일반 사람, 평범한 우리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한일 시민배우 워크숍
‘누구나 내 말을 할 수 있다’가 아닐까요? 우리 개개인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한일 관계 문제를 접할 때, 내가 한국인이어서~, 내가 일본인이어서~가 아닌 ‘나는 조미수로서’ 말할 수 있는 거죠. 내 생각이 누군가를 대표하거나 대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주체로서 상황을, 또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는 ‘가장 무서운 세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두가 화낼 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모두가 무관심할 때라고 생각해요. 뉴스 이미지와 신문기사로만 세상을 보게 되면 정말 그게 전부가 되잖아요. 뉴스에서 본 세상, 신문으로 읽은 사람에 우리 스스로 관심을 가질 때 세상은 무미건조해지지 않아요. 결국, 세상은 평범한 사람 한명 한명의 생각과 관심으로 변화하기에 일반 사람, 평범한 우리가 중요하죠.
‘평화는 무엇이다.’ 대표님의 답변은요? 평화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사람, 혹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말씀하신 평화가 적용된 이상향은 어떤 모습일까요? 평화를 흔히 ‘아름답다’라고 표현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정말 배제되는 이 없이, 소외와 차별받는 이 없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다채롭지만 정돈된 아름다움은 아닐 것 같아요. 평화가 적용된 이상향은 지금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극단은 없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쉽게 말해 혼란은 있지만, 전쟁은 없다는 믿음 같은 것.
우리 일상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대표님의 철칙이나 방법을 공유하자면? 같은 생각끼리 모이자, 다수의 의견을 따르자. 이 두 가지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생각끼리 편을 갈라 모이는 순간 갈등은 더 뚜렷해져요. 대립체가 생성되니까요. 또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 자연스레 소수의 의견이 배제되죠. 국가 간이든, 한 사회 내에서든, 더 좁게는 한 집단 안에서도 편을 가르지 않았으면 해요. 사람은 모두 생각과 표현방식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의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풀울림의 단기적, 또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는 세상이 정말 평화로워져서 ‘어 커먼비트’가 한일을 넘어, 동아시아, 남과 북 나아가 모든 지구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뮤지컬이 되길 바라죠. 현실적으론, ‘어 커먼비트’ 연습 과정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좀 더 구체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간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한일합동 연습할 때, ‘어울림 속의 개성, 다름 속의 조화’라는 워크숍을 진행해요. 평화, 문화다양성, 공동체 등 포괄적인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레 소통하는 워크숍이에요. 양국 관계에서 서로 민감한 역사나 정치적 이슈에 관해 토론하면 적대적 감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범위에서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주제로 하죠. 이런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일 시민배우 워크숍
또, 참가자끼리 자발적으로 토론과 워크숍을 만들어요. 내용은 다양해요. 이슈가 되는 한일관계에 관해 토론하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도 하고, 한국과 일본의 핫 플레이스를 함께 찾아가기도 하고, 또 양국의 같은 업무 종사자들끼리는 그 분야의 각국 트렌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이런 소규모 토론이나 워크숍을 잘 프로그램화하여 ‘어 커먼비트’ 뮤지컬을 함께하는 양국 시민에게 더 많은 교류의 장(場)를 제공하고, 또 뮤지컬 참여는 안하더라도 한일 민간교류를 원하는 이들이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뮤지컬 ‘어 커먼비트’에 대한 홍보와 관람 팁을 직접 전해주신다면?
1/28(일)에 일본 도쿄에서 공연하고, 2/4(일) 한국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해요. 특히 이번 공연은 일본 배우들도 한국어로 공연하다 보니 의미가 커요. ‘어 커먼비트’가 올해로 3회째인데, 이전에 관람하신 분들이 공통으로 ‘에너지를 받았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일반인들이 꾸미는 무대다 보니 완벽할 순 없지만, 정말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100명이 만든 무대이니 그 개성이 한데 모여 발산하는 강렬함이 있어요. 공연관림 팁이라면, 뮤지컬 제목과 같이 ‘어 커먼비트’(하나의 울림)는 남녀노소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에요. 영화 보듯 관람하는 것이 아닌 무대 위로 함께 뛰어들 수 있는 공연이니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한일공동뮤지컬 'A Common Beat'
(하나의 울림)] 일시: 2018. 2. 4(일) 13:00/ 17:30 장소: 마포아트센터 문의 및 티켓: https://pullullim.modoo.at/
인터뷰 윤혜성 사 진 조미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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