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더 살기 좋은 세상,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 중엔 남들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혁신의 길도 있다. 지난 6∼8일 대전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지역혁신활동가 대회(Better Together Challenge 2018)’는 국내외 300여 명의 컬처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만의 혁신 아이디어와 성과를 나누는 자리였다. 행사 참석차 방한한 두 명의 청년 혁신가, 나카무라 유(32)와 이반 미틴(31)을 만나 획일화된 세상을 다양한 색깔로 바꿔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좋은 삶 꿈꾸는 외국활동가 둘
세계 부엌 찾아 삼만리 나카무라
90개 도시 100명 집밥 되살린 책
세계 첫 시간제 카페 연 이반 미틴 거실 분위기, 커피·쿠키 무한 리필
◆“할머니 부엌에서 찾은 혁신”=일본인 나카무라 유의 직업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전세계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집밥 레시피를 수집하는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건강한 유기농 식재료 발굴 사업을 하고, 레스토랑 컨설팅과 사케 유통업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으니 여행가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그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놓고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의 독특한 활동은 그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시작됐다. 5년 전 그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머무를 집도 잃었다. 여행가방 하나 끌고다니며 “길고양이 같은 생활”을 해야했던 그에게 취미였던 여행과 요리가 인생의 돌파구가 됐다.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유 박스’ 프로젝트다. “여행을 다니면서 훌륭한 식재료 생산자들을 여럿 만났어요. 그들과 친분을 쌓아가면서 식재료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 삶의 일상적인 아름다움까지 알게 됐죠. 그 이야기를 글로 적어 식재료와 함께 담은 상자가 바로 ‘유 박스’에요.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 ‘선불을 내면 박스를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40여 명이 첫 주문을 하더라고요.” 일본 쇼도시마에서 시작된 ‘유 박스’의 생산지는 대만과 스리랑카·프랑스·스페인 등으로 확대됐고, 건당 고객 수는 200명까지 늘었다. 그는 “수익이 남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여행지 음식에 대한 관심은 현지인 할머니들의 부엌으로 연결됐다. 그의 도전은 용감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멋진 주름을 지닌 할머니를 만나면 배고픈 고양이처럼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슬쩍 부엌까지 따라들어가 요리하는 할머니 옆에 섰다. 진종일 요리를 돕고 수다를 떨다가 식탁에 밥을 차려 함께 먹었다”고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그가 전세계 15개국 90개 도시를 다니며 만난 할머니는 100여 명. 지난해엔 할머니들에게 배운 레시피를 모아 책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도 펴냈다. 책이 담은 ‘레시피’는 요리 레시피만이 아니다. 자세한 분량과 요리 과정 등은 도리어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할머니들이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찾아낸 지혜, ‘삶의 레시피’를 담았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빈곤, 그리고 수많은 재난을 겪은 분들입니다. 삶 자체가 ‘0’에서 ‘1’을 만들어낸 혁신의 과정이었죠.” 그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주름을 좇아다니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88세인 자신의 할머니가 알려준 삶의 레시피 하나를 전했다. “‘인생은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말라”=이반 미틴은 세계 최초의 시간제 카페 ‘치페르블라트(Ziferblat)’의 창립자다. 식음료 값을 받지 않고 카페에 머문 시간에 따라 요금을 계산한다.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영국·우크라이나·몽골 등 5개 나라에서 1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고객들이 시간제 비용을 지불하면서 카페를 ‘먹을 것을 사는 곳’이 아닌 ‘공간을 사는 곳’으로 인식하게 됐다. 카페의 초점도 커피가 아닌 교류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고 말했다.
‘치페르블라트’는 문학청년이었던 그의 ‘주머니 시(Pocket Poetry)’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주머니 속에 들어갈 만한 작은 종이에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프로젝트였다. “재미로 혼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블로그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결국 50여 명이 함께 모여 공동 작업을 하게 됐어요. 모임 장소를 구하기 어려워 2010년 모스크바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죠. 이용자들이 방에 올 때마다 자발적인 기부금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을 했어요. 그 돈으로 임대료를 냈고, 커피와 다과를 사서 나눠 먹었지요.”
‘트리 하우스’라고 불린 그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정식 매장을 내기로 하고 ‘분당 1루블(약 17원)’이란 기준도 만들었다. 요금 기준만 정해졌을 뿐 ‘치페르블라트’의 분위기는 ‘트리 하우스’ 그대로였다. 카페를 거실처럼 편안하게 꾸며놓고 커피와 요거트·쿠키·케잌 등을 마음껏 먹게 했다. 그는 “처음엔 분당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생각 같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곧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치페르블라트’를 두고 “별장같은 느낌이어서 좋다”는 고객들이 많았다. 그 말에 그는 ‘치페르블라트’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별장을 만들기로 했다. 2년 전 모스크바 교외에서 문을 연 호텔 ‘볼로토브 다차(Bolotov Dacha)’ 가 바로 그 별장 격이다. 호텔에서도 ‘소통’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주인과 투숙객이 함께 요리하고 식사를 나누어 먹는다. 식사 비용은 ‘마음만큼 내는 기부금’으로 받는다.
이반 미틴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호텔 고객들의 호평에 힘입어 공동체 마을 조성을 시작했다. 그는 “주머니 속의 시로 시작된 일이 예상치 못하게 커졌다”면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일단 해보라“고 권했다.
대전=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15개국 할머니 레시피 살리고, 1분 17원 시간제 카페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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