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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해녀 강경옥,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좋은 바다 밭

2018년 4월 9일 업데이트됨

2016 제주포럼 문화 세션 1. 청년리더 컬처 서밋

지난 5월 27일, 세계의 청년리더들이 제주도에 모였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월드 컬처오픈(WCO)가 함께한 제주포럼 문화 세션의 자리를 빛내기 위해서 였답니다. '청년리더 컬처 서밋 네 번째 발표자는 자랑스러운 우리 제주의 해녀 강경옥 님 닙니다. 어린 시절 해녀였던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 나갔던 그녀는 이제 어엿한 중급 해녀가 되었습니다. 집안일에, 친환경 농사에 해녀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척척해내는 슈퍼우먼입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일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제주해녀 강경 옥남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강경옥 '막내해녀'로 불리며 제주도에서 시작한 물질과 친환경 농사, 친정어머니에 시어머니까지 일곱 식구를 돌보는 바다 밭, 땅 밭, 살림 밭 모두를 일구는 만능 꾼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젊은 새내기 해녀로써 입문함과 동시에 어촌계 간사를 맡게 되고, 어머니가 물려준 친환경 농사도 시작하였다. 내 자식이 먹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언제나 힘쓰며 구좌 여성농민회 회원으로써 여성 농민의 복지 또한 돕고 있다. 농사와 바다 일을 겸하고 있지만 해녀질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후배 해녀 양성과 해녀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강인한 제주 해녀이다.


저는 제주도의 동쪽 마을 구좌읍 평대리란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16살, 14살, 12살의 세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농사꾼이자 주부입니다. 9년 전 부산에서 농산물 중개인으로 일하던 남편이 무형 성괴 사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수술을 하고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중개인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저는 어린 아들 셋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저의 고향 제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하지만 제가 남들보다 특이한 게 있다면 농사와 더불어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란 것입니다.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의 제주도 바닷가 마을 여자들 대부분은 해녀였지만, 최근에는 해녀를 하겠다는 젊은 여성을 찾아볼 수 없지요. 그래서 날이 갈수록 제주도의 해녀가 고령화되고, 그 수도 크고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주도에서 어린 해녀에 속합니다.

저희 엄마도 해녀십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엄마는 가장으로서 어린 두 딸을 키우기 위해 바다와 땅에서 쉼 없이 일했습니다. 지금의 저처럼 말입니다. 그런 엄마가 저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엄마가 바다에 들어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학교를 마친 저는 바다에 나가서 성게 따는 일을 도와야 했고, 천초 말리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바다여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일만 가득 안겨주는 바다는 싫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절대 해녀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해녀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녀의 길로 접어든 것은 귀향 후 마을 어촌계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촌계 간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전표에 기록하고 계산하는 업무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나에게 어촌계 일은 고정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어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녀의 삶을 알게 되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녀이지만 아직도 바다가 두렵고 어려운 대상입니다. 처음 바다 밭을 일구려 할 때 해녀 삼촌들은 하나같이 "무사 그 험한 물질을 허전 해시냐? 물었습니다. "그냥 해보고 싶어 한다"고 하니 모두 하나같이 "고랑 몰라, 해봐 사 알주 걱정했습니다. 몇 년 동안 드나들었지만 아직도 바다 밭의 지형을 알 수 없습니다. 또, 늘 거친 파도와 멀미를 이겨내야 하지요. 아랑 아랑 거리는 해초들과 함께 내 머릿속과 속도 울렁거리면서 자주 구토를 해야 했습니다.


해녀는 저승의 돈을 벌어 이승의 자식을 먹여 살리는 사람.

바다 일은 어렵지만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하 군 시절은 늘 바닷속 구경이 우선이었습니다. 물고기를 따라 바다를 누비고 문어 하나 소라 하나 잡을 때마다 "와! 나 문어 잡아 수다 외칠 정도였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파도가 거친 어느 날, 중간 바다에서 소라를 잡고 있는데, 멀리서 해녀 삼촌들이 "배알로! 배알로!"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래가 무리 지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고래의 커다란 덩치에 놀라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고래 떼는 유유히 내 발밑으로 지나갔습니다. 정말 크고 멋있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해녀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밭일과 바다 일을 함께 했듯이, 저 또한 땅에서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제주도로 온 이유도, 어머니께서 "제주도에서 유기농 농사를 해보라"는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밭농사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농작물은 당근과 감자입니다. 어머니가 권유한 것도 유기농업이었고, 저희 부부 또한 관심이 있었기에 친환경 농법으로 농작물을 기르고 있습니다. 때론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부부가 힘을 합쳐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많이 생사 되어도 걱정, 생산량이 줄어들어도 걱정. 농사일은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 일입니다. 비에 쓸려내려 한 해에 파종을 두 번 할 때도 있었고, 품질 좋은 당근이 팔리지가 않아 창고에 쌓이는 속 타는 일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천직으로 알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생산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해녀는 '똥군'이라고 불리는 초보자 하군, 중간 숙련자 중군, 프로급 전문가인 상 군으로 나누어집니다. 저는 한군에서 중군으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해녀입니다. 지난해 상 군들과 먼 바다에 나갔을 때였습니다. 처음 먼 바다에 나서니 끝도 안 보이는 바다 밑이 두려워 옴짝달싹 않고 있는데, 8명의 상군 해녀 삼촌들이 소라를 한 아름 안고 제 태왁에다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처음 농사지을 때에도 동네 삼촌들이 밭을 무상으로 빌려줬습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삼촌들은 파종에서 김 메기, 수확까지 하나하나 그들의 노하우를 저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천만금을 들여도 얻지 못할 경험에서 우러나온 농사 비법을 공짜로 터득하고는 했습니다. 저와 같이 밭과 바다를 오가며 생활하는 분들인데, 그 부지런함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스승으로 삼아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어촌계나 친환경농업공동체도 '수눌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바다에서 하는 3월의 톳 작업이나 5월 수확하는 우뭇가사리 작업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고 어촌계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총동원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밭에서 태풍철 당근의 뿌리가 잘 내리도록 세 번 정도 솎아주기를 할 때도 각자의 밭을 공동체원 모두가 순서대로 돌아가며 도움을 주어야 하지요.


혼자서는 물질은 더더욱 힘듭니다.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해녀들은 삼삼오오 모여 같이 물질을 합니다. 땅에서도 친환경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의논하고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등 여럿이 함께여야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수눌음' 정신없이는 농촌과 어촌이 지탱될 수 없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저 역시 노려 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친환경농업공동체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안전한 먹거리가 전국에 알려져 농촌도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저에게 베풀어준 이웃 삼촌들의 도움을 마을 공동체를 위해 되갚고 싶습니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바다 물질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물질했던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도 싶고 그들의 삶을 오래도록 배우고도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꿈은 상군 해녀 삼촌들이 비어 있는 저의 태왁 망사리에 소라를 가득 채워주었듯이, 저와 함께하려는 젊은 하군 해녀의 망사리에 소라와 전복을 채워주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꿈을 안고 바다 밭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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